폭스바겐, 생산 900만 대·차종 절반 줄인다…구조조정 가속
유럽 최대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이 연간 생산 능력을 1,000만 대에서 900만 대로 줄이고, 모델 라인업을 최대 50%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구조조정안이 이사회에서 부결된 상황에서도 그룹이 이 계획을 밀어붙이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내부 이견을 뛰…

유럽 최대 자동차 그룹인 폭스바겐이 연간 생산 능력을 1,000만 대에서 900만 대로 줄이고, 모델 라인업을 최대 50%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구조조정안이 이사회에서 부결된 상황에서도 그룹이 이 계획을 밀어붙이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내부 이견을 뛰어넘을 만큼 심각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생산 능력 10% 삭감, 차종은 절반까지
폭스바겐그룹이 제시한 수치는 숫자 자체보다 그 의미가 크다. 연간 1,000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메이커가 900만 대로 규모를 줄인다는 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를 다시 짜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모델 라인업을 최대 절반까지 줄이는 방안도 함께 추진 중이다. 이는 폭스바겐, 아우디, 포르쉐, 스코다, 세아트 등 산하 여러 브랜드 전반에 걸쳐 중복되거나 수익성이 낮은 모델을 걷어내겠다는 뜻이다.
이번 계획이 단숨에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사회는 이미 한 차례 구조조정안을 부결시켰다. 그럼에도 그룹 경영진이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내부에 팽배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 실패와 미국 관세, 겹친 악재
폭스바겐이 이토록 빠르게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는 두 가지 대형 악재가 겹쳐 있다. 하나는 중국이다. 한때 폭스바겐에게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이었던 중국에서 BYD를 필두로 한 현지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전동화 전환에서 뒤처진 폭스바겐은 가격 경쟁에서도, 기술 경쟁에서도 밀리는 형국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관세다. 아우디와 포르쉐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폭스바겐그룹 전체 수익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미국이 수입차에 부과하는 관세가 이들 브랜드의 마진을 직접 갉아먹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수익성이 흔들리면, 그룹 전체의 재무 여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동화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시점에 가장 들어오지 않아야 할 타격이 들어온 셈이다.
노사 타협은 난항, 추가 비용도 예고
구조조정의 가장 큰 장벽은 노사 관계다. 독일 현지에서는 오는 9월 감독이사회 전까지 노사 간 타협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폭스바겐 독일 공장의 노조는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대규모 생산 축소와 모델 감소는 곧 고용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협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재무적 충격도 예고된 상태다. 금융권 분석가들은 올 하반기에 수십억 유로 규모의 추가 구조조정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 비용은 생산 시설 조정, 인력 구조 변화, 모델 단종에 따른 관련 비용 등 여러 항목에서 발생할 전망이다. 이미 실적 압박을 받고 있는 폭스바겐에게 단기적으로는 추가 부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동화 시대 '덩치의 역설', 이제 청구서가 날아든다
폭스바겐의 현재 상황은 '규모의 경제'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전통 완성차 메이커가 전동화 전환기에 맞닥뜨리는 구조적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넓게 펼쳐놓은 브랜드와 모델, 그리고 대규모 생산 시설은 시장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강점이 된다. 하지만 소비자 취향이 빠르게 바뀌고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국면에서는 같은 덩치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폭스바겐이 이번 구조조정을 얼마나 속도감 있게, 그리고 노사 갈등 없이 풀어가느냐에 따라 향후 2~3년간의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9월 감독이사회 일정이 사실상 첫 번째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 전까지 내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속도는, 폭스바겐이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점이 이 그룹이 처한 딜레마의 핵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