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벤츠·닛산 공장 문 닫는 사이, 중국차는 해외로 뻗어나간다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수요 위축과 전동화 전환 지연이 겹치면서 유럽과 일본의 전통 강호들이 잇달아 감원과 공장 폐쇄를 추진 중인 반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해외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도 이…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수요 위축과 전동화 전환 지연이 겹치면서 유럽과 일본의 전통 강호들이 잇달아 감원과 공장 폐쇄를 추진 중인 반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해외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과 일본, 구조조정의 파도
메르세데스 벤츠는 독일 내 공장 일부를 방산 합작사 KNDS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자동차를 만들던 공장이 방산 업체의 손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유럽 자동차 산업이 처한 현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벤츠는 이미 수익성 압박을 이유로 고급 세단 라인업을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고 있다.
닛산은 상황이 더 구체적이다. 일본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오파마 공장을 2028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오파마는 닛산의 핵심 생산 거점 중 하나로, 이 결정은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일본 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폭스바겐 역시 독일 내 복수의 공장 폐쇄와 수만 명 규모의 감원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의 노조와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업체가 공통적으로 꼽는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기차 전환에 따른 수요 불확실성이고, 다른 하나는 예상보다 느린 시장 전환 속도다. 유럽 소비자들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쉽게 이동하지 않으면서, 기존 공장의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고정비는 그대로인데 팔리는 차가 줄어드는 구조가 지속되자, 결국 생산 설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반대로 움직인다
같은 시간, 중국 완성차 업체들의 행보는 정반대다. 이들은 유럽과 일본 업체들이 손을 떼는 공장을 인수하거나, 신규 해외 생산 거점을 늘리는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BYD를 비롯한 중국 브랜드들은 이미 동남아시아, 유럽 일부 지역, 남미 등지에 현지 공장을 세우거나 기존 시설을 활용한 생산 계약을 맺고 있다.
이 전략의 핵심은 '현지화'다. 관세 장벽을 피하고,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이 단순히 차를 수출하는 단계를 넘어, 현지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통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이는 동안, 중국 업체들은 그 빈자리를 채우며 브랜드 인지도와 생산 역량을 동시에 쌓고 있다. 이 격차가 단기간에 좁혀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 노사 갈등이 발목
한국 자동차 산업도 이 파고 앞에 서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전환과 해외 생산 확대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노조의 파업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전환의 속도가 절실한 시점에, 노사 갈등이 대응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업계 안팎에서 제기된다.
'하투', 즉 하계 총파업은 매년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생존을 가르는 시기에 생산 차질이 생기면, 그 손실은 단순한 판매량 감소를 넘어 장기 신뢰도와 납기 신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미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한국산 차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일수록, 공급 안정성은 브랜드 경쟁력의 일부가 된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미국 조지아 공장, 인도 공장 등 해외 생산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국내 공장의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전동화에 대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는, 결단을 미룰수록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전환기의 명암, 기회와 위협이 동시에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지금 가장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전통의 강자들이 후퇴하고,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공백을 채우는 흐름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어떤 업체가 살아남고, 어떤 브랜드가 시장에서 사라지는가는 전략과 실행의 차이에서 갈릴 것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 입장에서는 이 시기가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일본과 유럽 업체들이 공장을 닫고 물러서는 자리에, 경쟁력 있는 전기차와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춘 업체가 들어설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회를 잡으려면, 노사 관계의 안정과 신속한 전동화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글로벌 시장이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간은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